저는 에스키모의 개입니다.

 

 

 

 

 

 

 

 

 

 

 

 

 

 

북극의 에스키모인들과 함께 사는 개이지요.  에스키모인들은 원래의 교통 수단으로

흰곰의 가죽으로 만든 눈썰매를 이용하는데, 그 눈썰매를 제가 끕니다.

가슴과 등허리에 씌운 가죽끈을 마치 한국 여성의 코 고무신처럼 생긴 썰매에다

길게 연결하여 신나게 북극의 얼음판 위를 달립니다.

 

물론 저 혼자 끄는 게 아니지요. 썰매가 작고 탄 사람이 한두 명일 땐 두세 마리가 끌지만

보통 10여 마리가 함께 끕니다. 북극의 태양 아래 길게 그림자를 이루며 빙원을

달리는 우리 모습은 일대 장관이랍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저는 병이 들었답니다. 이제는 기운이 없어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마냥 주저앉고 싶어진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근육이 발달하고,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든 탓이지요.

한번은 빙하 지역에서 툰드라 지역으로 이동할 때였습니다. 주인은 줄을 짧게 해서 저를

썰매 가까이에다 두고 달리게 했습니다. 썰매가 달리는 속도가 늦거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지치는 기색이 있으면 채찍을 들어 사정없이 저의 등줄기를 후려쳤습니다. 

저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통에 찬 저의 비명 소리에 친구들은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힘껏 달렸습니다. 제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친구들은 채찍이

자기들의 등줄기에 떨어질까 봐 겁이 나 더욱더 열심히 달렸습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병약해 죽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주인은 꼭 그 친구를 썰매 가까이에 두고

가죽 채찍으로 후려쳤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친구의 비명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빙원을 달렸습니다.     자칫 잘못 그 채찍이 제 등줄기 위에 떨어질까 봐 얼마나

가슴 졸이면서 달렸는지 모릅니다. 그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우리들을 힘껏 달리게 하는 셈이지요.

주인은 바로 그 점을 노렸습니다. 저는 이제 제게 곧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 동안 주인의 채찍을 맞으며 빙원을 달리다가 죽어간 친구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으니까요.

달리다가 쓰러지면 주인은 우리를 그대로 빙원에 버렸습니다. 흰곰의 먹이가 되어도

아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날이  후회 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친구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은 위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위해 살아 볼 수 있을까.

그러자 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 이젠 더 이상 비명 소리를 내지 말자.  주인이 후려치는 채찍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지 말자. 그러면 친구들을 그 폭력의

두려움에서 건져낼 수 있을 거야.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떠는 친구들을 그 공포로부터

구할 수 있을 거야. 나의 고통은 나 하나로 족한 거야. 그래서 저는 정말 울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채찍을 후려쳐도 결코 비명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북극의 차가운 빙판

위에 쓰러져 저 혼자 버려질 때까지 말입니다.

 

 

                                                                                              -정호승-

 

 

 

 

 

 

 

  

 

 

 

 

 

 

 

 

 

결국사랑은 조건과 미래를 내다 보지 않는 현재의 "희생" 인가 봅니다.

 

 

L o v e-S.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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