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가족들 곁을 떠나신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경황이 없었고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 이제야 인사 올립니다.
장인어른이 먼저 가시고 세상에 정들 것이 마땅치 않으셨는지 어머님은 병과 정이 드셨습니다. 
몸이 상하시면서 마음도 상하실까 봐 가족들 또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머님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미안하고 죄송해서 많이도 울고 또 벙벙했습니다.   
이별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족의 부고는 생에서 최고의 상실 입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단정한 제복 차림으로 밤늦은 시간 텅 빈 장례식장에 지친 마음의 가족들 앞에서 
차근차근히 절차와 주의 사항을 설명해 주던 모습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슴 한가운데를 통째로 잃어버려 대책 없고 속수무책이었던 그때, 상실에 빠진 가족들과 
고인의 중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최 선생의 직업의식,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자부를 봤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분명히 어머님에게 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진지하고 명징한 메신저를 만났던, 참 다정한 내 편을 곁에 둔 든든한 심정이었습니다. 
오전 10시경이었을까요? 어머님을 모습을 뵐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알코올로 최선을 다해 닦아드렸습니다. 
화장도 예쁘게 해 드렸습니다. 모습을 뵐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얼굴도 만져보시고 안아도 보시기 바랍니다.” 
6개월 선고를 받고 2년 동안 가족들이 섭섭해하지 않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 주셔던 꽃단장하신 
어머니를 안아보면서 가족들은 최고로 슬퍼하면서도 순간순간 절도 있고 정성 스럽게 진행하셨던 모습 또한 기억합니다. 
일요일 하루밖에 없었던 조문객의 방문에 가족들은 최선을 다 했습니다. 
염습과 입관, 발인과 장지 운반 마지막 3일 동안 그런 가족들을 위해 
최 선생의 세심함과 꼼꼼함, 권영님 선생의 따뜻함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끈끈한 전우애라고 표현하면 맞지 싶습니다.


생전 어머님의 모습은 단정함, 다정함, 세심하고 따뜻함이셨습니다. 
어머님 또한 메신저 역할을 하셨던 최 선생님을 보고 아주 고마워하셨을 겁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절도 있고 단정한 모습, 무엇이 필요한지 
꼼꼼히 챙겨주던 든든한 모습 우리 가족들 모두는 최 선생님 덕분에 정신적 육체적 고조의 
꼭짓점을 넘어서서 한뼘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술술 풀릴 일만 남았습니다. 3일이었지만 몹시도 짧았고 이별은 영원 입니다. 
최 선생님 덕분에 든든했고 또 뭉클했습니다. 부자가 되는데 도움은 못 되더라도 
평생 최 선생을 기억하겠습니다. 웨딩 플래너가 있듯이 장례 플래너로서는 
국/가/대/표라며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며 떠들고 다니겠습니다. 
최 선생과 최 선생의 가족들 모두 안녕과 번영을 빕니다. 
최 선생님, 권 팀장님 최고였습니다. 

가족 모두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격하게 감사드립니다.





PS: 최 선생님 명복공원에서 잘 생겼다는 말에 못 생겼다고 말씀 하셨지요.  
우리 가족들한테는 배우 보다 더 멋졌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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